내 삶의 아모리
반쪽 순종, 반쪽 성공
사사기 1:22-36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삿 1:36)
아모리 족속의 경계...
1. 여러 지파들의 정복활동에 대해 나오고 있는데 어째 좀 찝찝하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흠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기 위해 오래 전에 명령하신 것이 있다.
'가나안 거민을 진멸하라'(신 7:2)
근데 지금 여러 지파들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삿 1:22)의 뒷배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원주민과 공존하려 하고 있다(삿 1:28).
특히 아셀 족속과 납달리 족속은 그저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고(삿 1:32-33)...
심지어 단 자손은 아모리 족속에 쫒겨 산으로 골짜기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삿 1:34).
결국 이스라엘 여섯 지파의 정복사업에 관한 기록이 찝찝하게 끝이 난다.
'아모리 족속의 경계'(삿 1:36)로 설명이 끝나는 것은 여전히 그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2.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가면서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은 '유익'이었음을 말씀하신다.
이유는 여러가지로 인도주의라는 차원에서 살려두고 대신 노역을 통해 유익을 보겠다는...
사실은 내 배를 위한 불순종이었음을 말이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면서 얼마나 이런 불순종을 범하고 있는지 물으신다.
오늘 계속 반복되는 단어들...
'쫒아내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누리기보다 자신들의 유익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컷음을 드러내고 계신다.
물론 오랜 전투로 지쳤을 수도 있고, 가나안 족속의 무기와 저항이 완강했던 요인도 있겠지만...
진정한 실패 원인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완전한 승리보다 도중에 자신의 유익을 찾아 중단하는 데 있었음을 말이다.
3. 내 삶을 돌아본다.
내 삶에도 여전히 근절시키지 못하는 아모리 족속은 없는지...
그래서 여전히 내 삶의 경계가 그것에 의해 정해지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니 아직도 여전히 그런 내 삶의 아모리가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도 그 앞에만 서면 작게만 느껴지는 내 삶의 아모리...
그곳에도 온전히 십자가가 우뚝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근데여… 주님.
제 안에 있는 고놈의 아모리는 왜 이리도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제 삶의 경계의 한 귀퉁이를 잡고 있는거죠?
이거 사도 바울의 가시 같은 건가요…
아니라면 '내 삶의 아모리'를 없애게 도와주실래요… 주님.
그제에 이어 어제도 계속 이 땅에 일대일 제자양육의 물꼬를 트시는 주님…
이제 주님이 여시고 이 땅에 길을 내실 주심을 기대할게요.
길을 내실 여기 우크라이나 땅 전체를 제 좌표로 올려 드려요.
오늘의 미전도종족: Urdu 의 사우디 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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