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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에 민감한 믿음

기회에 민감한 믿음

간절한 기다림과 외침, 소원을 이루시는 주님
마가복음 10:46-52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막10:51)
맹인...

1. 예루살렘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가시는 중 여리고를 갔다가 떠날 때에 일어났던 사건...
거기서 만난 '맹인'(막10:51) 바디매오이다.
마태복음엔 두 명의 맹인, 누가복음에는 바디매오라고 한 사람이 나온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막10:48)
이는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았던 것 같다.
평생에 만날 수 없는 기회를 얻은 이는 큰 소리를 지른다.
무리들은 세상은 잠잠하라고 저지하지만...
절대 양보할 수 없다.
눈 뜨는데 무리가 세상이 도와줄거냐는 마음으로...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인 걸 아는데 잠잠할 수가 있을까.
'맹인'(막10:51)은 '무감각'이고 '체념'을 의미한다.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이것인데 사람들은 다른 것을 구한다.
내 보기엔 맹인들이 정상이고 무리들이 맹인들이다.
맹인 바디매오는 얼마나 많은 리허설을 했을까.
자신이 맹인이고 거지이기에...
기회가 많지 않기에...
한번에 꼭 예수님을 만나야겠기에 말이다.

2. 바디매오의 믿음은 촛점 맞은 믿음이었다고 하신다.
건강이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죄가 문제인데...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인데...
촛점을 못맞추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고 말씀하신다.
특별히 바디매오처럼 '기회에 민감한 믿음'이 없고 그저 교회 댕기는 믿음 뿐이라고 말이다.

3. '잠잠하라'(막10:48)에는 늘 두 가지가 있음을 고백한다.
세상이 '잠잠하라'하는 핍박과...
하나님이 '잠잠하라'하는 평안이다.
세상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하는 '잠잠하라'는 핍박에 대해서는...
바디매오와 같이 더욱 심히 소리 질러 외치며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하고...
하나님이 일하시고 예비된 은혜를 주시기 위해 말씀 주시는 '잠잠하라'라는 평안의 말씀에 대해서는...
하고 있는 모든 생각과 방법을 멈추고 그분 만을 바라보고, 그분이 일하시는 것을 그저 보기만 해야 함을 고백한다.
예수님의 다가오심에 그리고 얻을 은혜에 민감한 간절한 외침은...
멈추지 않은 신앙고백은...
예수님의 발걸음마저 멈추게 한다(막10:49).
무리가 세상이 막고 있는 '맹인'을 향해 예수님이 다가가시는 모습이 대박 예고를 보게 하신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막10:51)
바디매오를 구원한 믿음은 "보기를 원하나이다"(막10:51)라고 고백하는 '기회에 민감한 믿음'일 뿐만 아니라...
필요를 정확히 아는 믿음이었다.
바디매오를 구원하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게 한(막10:52) 믿음은 '기회에 민감한 믿음'이었음을 말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것은 큰 무리(막10:46)...
이렇게 따르는 무리를 제자라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외쳐대는 맹인 바디매오를 "잠잠하라"라고 저지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아닌 그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이다.
하지만 막10:52에 나타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이젠 맹인 바디매오가 아니라 제자이다.
그야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더 이상 제자가 아닌 반면...
무리의 저지를 받던 맹인 바디매오는 제자가 되는 역전 드라마와도 같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늘 역전을 믿으며 그 역전을 일으키는 분이 예수님임을 신뢰하며 그 분께 아뢰는 것이 아닐까.

근데여... 주님.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니...
정말로 맹인된 자는 바로 저였네요.
전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리어설까지 한 적은 없거든요.
바디매오처럼 준비된 고백을 주님께 드릴 때 기적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됨을 고백해요.
날마다 제게 묻고 계신 주님의 질문…
"네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에 날마다 답할게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요.
맹인처럼 죄를 못보게 했던 제 안의 무지를요.
맹인처럼 형제를 못보게 했던 제 안의 욕심을요.
맹인처럼 이웃를 못보게 했던 제 안의 무관심을요.
맹인처럼 공동체를 못보게 했던 제 안의 교만을요.
맹인처럼 주님을 못보게 했던 제 안의 죄들을요.
이제 영적인 눈을 뜨고 이 땅에서 선포하는 자로 서게 해주세요.
“어떻게 잠잠할 수 있겠어!”
'기회에 민감한 믿음'은 주님을 만날 때 보여져야 함을요.
'주님이 기회'임을요.
제가 섬기는 땅들 사람들에게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되는 역전 드라마가 있게 해주세요.
두고 온 우크라이나가 점점 어려운 현실 속에서 그들이 하나로 뭉치도록 그들의 마음을 주님이 고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