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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암벽 등반

율법의 암벽 등반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받는 약속
갈라디아서 3:10-1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향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율법의 저주...

1. '율법의 저주'(갈3:13)는…
행위로 지켜야만 한다는 것인데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믿음도 50% 행위도 50%라고 하지만...
행위 50%라는 말은 율법을 100% 지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저주 아래 있게 된다는 말이다.

2. 그런데 갈3:11,16에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100%면…
'율법의 저주'(갈3:13)를 벗어날 밧줄을 내려준다는 '하나님의 약속'(갈3:18)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두에게 임할 것이라는 복음을 말씀하신다.

3. 율법이라는 거...
첨부터 나에게 율법을 지키라 하면 포기했을 거 같다.
난 바리새인 체질이 아니기에 말이다.
근데 하나님은 약속(갈3:18)을 지키셨다.
'율법의 저주'(갈3:13)에서 '율법의 암벽등반' 중간에 있어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면서까지 살리신다.
그것도 그냥이 아니라 그 아름답고 위대한 생애를 보낸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비참하게 죽으셨다.
유대인에게는 저주(갈3:13)로 여겨졌던 그리고 로마인에게는 disgrace 라고 여겨 십자가 형도 주지 않았던 십자가에서 말이다.
아름답고 위대한 생애를 살면 귀하게 살고!
악하면 비참하게 죽고!
이렇게 될 거라는 모두의 그리고 나의 기대를 바꿔 예수님은 이렇게 채찍질을 당하고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혀 비참하게 죽으시며 나와 하나님 간의 끊어졌던 관계를 이으셨다.
"나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라" 하시며 아름답고 위대한 생애를 산 예수님은 비참하게 죽고!
악한 나는 귀하게 살게!
나의 기대와 어긋나게 연결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건이 십자가임을 고백한다.
이게 십자가임을 말이다.
'율법의 저주'(갈3:13)…
이젠 완전한 구원의 밧줄을 ‘율법의 암벽등반’에서 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기를 주저하는게…
더 저주 속으로 가는 것임을.

근데여... 주님.
모두가 율법의 저주라는 암벽 중간에서 꼼짝달삭 못하고...
힘이 빠지면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랑과 은혜라는 강한 재질로 만든 그리스도의 밧줄을 던져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밧줄을 붙잡아야 살 수 있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밧줄을 모두에게 내려 주시겠다는 약속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임을 고백해요.
율법의 저주 속에서 그리스도의 밧줄 잡기를 주저하지 않도록...
주님 보내신 땅도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회복되게 해 주세요.
사랑의 수혈이 필요하거든요.
믿음 50% 행위 50%의...
'율법의 암벽등반'의 저주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 100% 이고...
그렇기에 행위도 100% 드러날 수 밖에 없음이 진정한 믿음을 누리는 의인의 삶이고...
믿음이 바로 삶이 되도록요.
저처럼 ‘율법의 암벽등반’했던 암벽에 매달린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밧줄이 바로 옆에 내리워져 있음을 전해야겠네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밧줄을 잡는 게 바로 믿음이 삶이 되는 시작이라고요.
섬기는 땅들 사람들도 '율법의 암벽등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밧줄 잡게 해주세요.
우크라이나가 하나되어 어서 전쟁이 끝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