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숫자
통곡이 아닌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사기 20:17-28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삿 20:22)
전열...
1. 어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번엔 하나님께 여쭙는 것 웬일일까(삿 20:18)...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전쟁을 결정하고는 요식행위로 묻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를 너무도 잘 아셨기에 말씀아닌 말씀을 주신다.
"그래... 그럼 유다가 한번 싸워봐..."(삿 20:18)
이 일에 있어서도 가나안 족속을 정복할 때와 같이(삿 1:1-2) 유다 지파가 앞장선다.
뜻밖의 패배다.
26,000 : 400,000 의 대결...
근데 400,000 쪽이 말도 안되게 첫 날에 22,000 명이 당한다.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 다시 싸울 준비까지 다 '다시 전열'(삿 20:22) 해놓고 나서 그제서야 또 하나님께 묻는다(삿 20:23).
2. 전열을 갖춘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하나님께 물었어야 했는데...
그저 싸우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라고 말씀하신다.
"너도 예전엔 그랬잖아" 하신다.
형식적으로 벧엘에 찾아가서 경건의 모양만 갖추었을 뿐, 그들 안에 있는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베냐민 지파를 직접 심판하려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고자 했다고 말이다.
3. 두 번이나 베냐민 지파와 붙었는데 이튿날엔 18,000명이 당했다.
22,000 + 18,000 = 40,000 명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그리도 계산에 정확하신지.
두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죽은 숫자는...
떵떵거리고 자신의 숫자만을 믿으며 내가 가진 십분의 일(삿 20:10)이면 베냐민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교만의 숫자'...
40만의 십분의 일인 40,000 명이었다.
4만명이라는 '교만의 숫자'가 완전히 죽자...
그제서야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한다(삿 20:26-27).
예상치 못한 두 번의 패배...
사람은 이런 실패와 패배를 경험해야 하나님 앞에 겸손해진다.
그들도 전쟁을 하기 전에 두 번 모두 벧엘로 나아가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기는 했다.
그러나 모두 패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스스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까지 팔짱끼고 기다리신다.
아무래도 그게 제일 최선이기에 말이다.
울며 금식하고 저물도록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이스라엘 군사들...
옳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소견을...
믿고 있던 자신들의 '교만의 숫자'를 진정으로 내려놓고 여호와의 뜻을 구하는 모습이다.
고난은 기도를 바꾸게 한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삿 20:18)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삿 20:23)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삿 20:28)
그들이 눈물과 금식과 번제와 화목제로 예배하며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자...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삿 20:28)라고 약속하신다.
이제 제대로라고 말이다.
근데 사사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목...
왜 갑자기 사사기에선 거들떠도 안보는 언약궤와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나오고 있는 것일까(삿 20:27-28)...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늘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곳에 제사장도 함께 하며 어떤 결정을 놓고 늘 물어야 정상이었다.
근데 불순종과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궤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사사 시대를...
진정한 대제사장 하나 없던 사사 시대를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이다.
드디어 그 때에는(삿 20:27) 하나님의 언약궤도 비느하스 대제사장도 있음을.
얼마나 오랜 만이면...
하나님이 이러실까.
그 때에는…
그 때에는…
근데여… 주님.
제 안에도…
제 삶에도…
심지어 제가 드린 헌신에도…
떵떵거리고 자신의 숫자만을 믿으며 내가 가진 십분의 일이면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교만의 숫자'…
많지요?...
그것들이 다 죽으면…
그 때에는…
하나님이 일하시기 위해 개입하실 거 알아요.
교만을 고만하지 못해 고난이 온다는 걸요…
고난의 승패는…
전쟁의 승패는…
숫자가 아니라…
내가 가진 숫자의 십분의 일이라는 '교만의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넘겨 주시겠다는 약속에 달려있음을 고백해요
도움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자각하고 하나님만 바라는 겸손한 모습으로 내려가는 것…
그게 하나님 앞에서 give up 임을요.
나를 위로 올려(up) 드리는(give) 것임을요.
우크라이나 땅 전체를 제 좌표로 올려 드려요.
오늘의 미전도종족: Kaman 의 미얀마!
https://unreachedoftheday.org/index.php?m=9&d=17&y=2021&lang=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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